내가 낸데
'MZ' 라고 칭하는 최근의 20대를 대표하는 말이라고 한다. 당사자들이 실제로 '내가 낸대!'의 마음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어른들이 뒤집어씌운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저런 마음가짐은 동기부여의 측면에서 봤을 땐 좋은 출발점이다. 보상과 처벌과 관계없이, '내가 세운 목적,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강한 동기부여는 빠르게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런 트렌드를 대표하는 삶의 방식으로 '갓생살기'를 꼽을 수 있다. '갓생살기'는 큰 목표를 세우는 대신, 아주 소소한 목표들을 세우고, 매일 조금씩 지키는 것이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 꼭 해야만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들을 차근차근 이룸으로써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얻는다. 누군가가 시켜서, 뭔가를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갓생살기'는 '퀘스트'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생활 양식뿐만 아니라, 현실의 업무도 바뀌고 있다. 많은 젊은 직장인들은 회사 일부가 되기보다, '나' 라는 하나의 고유한 주체로 빛나기를 원한다. 회사란 평생 머무는 곳이 아니라, 최고를 향하는 내 인생 과정에서 잠깐 머무르는 곳일 뿐이다.
'워라벨'이라는 단어에 이런 변화가 담겨있다. 이제 사람들은 월급이나 승진 같은 외부의 보상을 높은 가치로 치지 않는다.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같은 나만의 퀘스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기가 정말로 잘하는 것에 더 몰입하고, 좋아하는 것에는 돈이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봉사, 기부 같은 사회적 공헌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물질적 보상, 물리적인 처벌이 없어도 '퀘스트'를 만들고, 동기를 부여한다.
조직도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이제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형태의 운영을 선택한다. '이거 하세요. 저거 하세요'식의 서브 퀘스트를 걷어내고, 직원들 스스로 퀘스트를 찾고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만 한다. '당신의 퀘스트 달성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길을 선택하시고, 맘에 드는 방법을 사용하세요'같은 '소울류'다.
성공한 신생기업의 탐방 인터뷰를 보면, 대부분 분위기가 이렇다. CEO는 직원들에게 할당량이나 실적을 요구하지 않는다. '직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라고 말한다. 직원들 역시 자유롭게 일한다. '정해진 것은 없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일합니다. 모두 항상 열심히 공부해요'라고 한다.
이런 형태의 조직에서는 '나의 퀘스트'가 곧 '우리의 목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내적 동기부여에 의한 퀘스트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조직의 목표 도달에도 영향을 미친다.
누구나 최고로 잘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그 자리를 지키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보스를 잡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게임에서의 '협동 퀘스트' 처럼 말이다.
'할당량'을 들이밀며 직원들을 쪼고 성과를 압박하는 조직, '참여'가 곧 실적의 척도가 되는 조직은 오로지 외부 자극으로 운영된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도 어느 정도 결과는 낼 수는 있다. 하지만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지긋지긋한 서브 퀘스트에 질리고, 게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직원들은 '처벌'을 피할 정도의 행동만 할 뿐이다. 회사가 제시하는 퀘스트가 반갑지 않다. 어떻게 하면 안 들키고 'Skip'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유일한 보상 '월급'만 얻어가길 바란다. 실제로도 내 주변에는 이런 형태의 '월급도둑' 직장인이 많다.
스킨만 바꾼 '노동'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동기부여를 통해 행동을 변화하는 것.
행동의 변화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에 도달하는 것.
이 과정이 쉽지 않으니, 사람들이 누구나 좋아하는 게임의 요소를 사용하는 것.
'게이미피케이션'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많은 조직은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참여를 끌어내길 원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게이미피케이션'을 선택한다. 업무를 게임의 형태로 바꾸고, 열심히 참여해서 성과를 낸 직원에게는 보상을 주는 방법이 가장 대표적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언급한 퀘스트의 방식과 비슷하다.
'퀘스트를 제시한다 - 보상을 준다 - 이를 통해 즐거움과 동기부여를 얻는다 -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낸다'의 과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과연 계속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는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은 앞서 언급했던, '결과'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추구하는 방식, '외부 자극에 의한 동기부여'를 그대로 현실에 대입하는 방법은 그 효과가 오랫동안 유지되기는 어렵다. 단기간의 효과는 나타나겠지만, 지속해서 변화를 이어 나가고 조직 전체의 속성을 바꾸지는 못한다. '내가 설정한 퀘스트'가 아니라는 한계 때문이다. '남이 설정한 퀘스트'에는 지루함이 따른다. '보상 돌려막기'에는 한계가 있고, 플레이어들은 보상에 도달하기 위한 'Skip'버튼을 찾을 것이며, 할당량을 빠르게 채울 수 있는 편법을 찾아낼 것이다.
'게이미피케이션'이라고는 하지만, 목표를 제시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형태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존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엔 그냥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의 스킨'을 덮어씌운, 업무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게이미피케이션'에 '#전자채찍'이라는 해시태그가 붙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기능성 게임' '시리어스 게임'의 한계점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포인트' '배지 달성'을 통해 참여와 동기부여를 끌어내는 것은 좋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개인의 역량, 성격, 잠재력 등 다양한 능력을 알아보려는 시도는 미흡했다. 더 많은 퀘스트를 제시하면, 플레이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단순한 접근이었다.
'게임 좋아하지? 퀘스트 많이 하면 좋잖아'의 '유비식' 진행이 '게이미피케이션'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현실에 그대로 적용됐다. 이 과정을 통해 결과에 대한 데이터는 많이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데이터에는 플레이어들의 'skip'과 '편법'이 잔뜩 묻어있을지도 모른다.
플레이어가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어떤 부분에 강점이 있는지, 개선할 능력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이 플레이어가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찾는 방법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의 접근은 부족했다.
즉, 플레이어들의 취향이나 능력을 찾아내는 것보다, 게임을 통해 얼마나 성과가 향상되었는가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실패한 게이미피케이션'의 사례가 대부분 이렇다. '유비식 퀘스트'를 그대로 현실로 가져오다 보니 그 부작용이 현실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게이미피케이션' 위에서 노는 플레이어들의 '진심모드'를 간과했다. 물론, '진심모드'가 발동되는 버튼을 찾아내고, '개별 맞춤 퀘스트'까지 도달하도록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기간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게이미피케이션' 역시 단기간에 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역량이나 잠재력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나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패치 노트 : 게이미피케이션
몇 번의 실패와 부작용을 겪은 게이미피케이션은 계속 패치되고 있다. 산더미 같은 퀘스트는 결국 게이머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게임에서도, 그리고 게임을 현실에 접목한 게이미피케이션에서도 알게 됐다. 이제 퀘스트는 플레이어에게 목표를 던져주고, 달성한 결과물을 평가하는 것 대신, 어떻게 하면 플레이어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는 지를 생각한다.
퀘스트는 학습과 숙달을 이끌고 그 과정을 통해 재미를 느끼고 동기부여를 하는 역할을 하지만, 계속 반복되면 귀찮음과 노가다로 바뀐다. 가장 이상적인 퀘스트란, 게이머가 스스로 도전하고, 성장하고,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한단계 더 발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현실에 적용한 게이미피케이션 역시 단순히 결괏값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오랫동안 몰입하고 변화할 수 있는 그 과정을 찾아주고 발견하는 방향으로 패치되고 있다. 이제 당근과 채찍에 의존하는 퀘스트, 목표를 달성하십시오의 시대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제시하는 퀘스트가 아니라, 찾게 하는 퀘스트의 역할로 바뀌고 있다.
몇 시까지 출근, 몇 시에 퇴근, 회의 참석, 회식 참석, 보고서 제출 과 같은 수많은 서브 퀘스트를 과감하게 던져내고, 자신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세요의 단순함을 제시한다. 플레이어는 여기에서 해방된 순간, 비로소 지식 넓히기, 숙련도 높이기, 스킬 획득하기, 다른 사람 돕기, 게임 한글화하기 같은 자신만의 퀘스트를 찾는다.
PRG에서의 퀘스트,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게이미피케이션'은 앞으로 더 '플레이어 친화적'인 방향으로 패치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