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당신은 게임을 플레이하다 두 갈래 길을 발견한다. 한쪽에는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는 푸른 들판과 조용한 시골 마을이 보이고, 다른 한쪽에는 천둥이 치는 아래로 무너져가는 한 성이 보인다. 지금 막 큰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참이라 마을에서 잠시 정비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꼭 저런 성의 꼭대기에는 보물 상자가 있을 것 같다.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하겠는가?

 

게임 '메탈슬러그 3'의 스테이지 2 분기점. 오른쪽 이정표를 따라가지 않고 왼쪽 동굴로 들어가면, '엘리펀트 슬러그'에 탑승할 수 있다.
게임 '메탈슬러그 3'의 스테이지 2 분기점. 오른쪽 이정표를 따라가지 않고 왼쪽 동굴로 들어가면, '엘리펀트 슬러그'에 탑승할 수 있다.

 

선택을 해야 하는 당신 앞에, 표지판이 하나 꽂혀있다면 어떨까.

'마왕의 성: 과거 이곳을 올라가려는 많은 용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혹은,

'마왕의 성: 꼭대기까지 클리어 시 마왕의 대검과 방패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왕의 대검: 공격력+100, 마왕의 방패: 방어력+50)'

이제 당신은 천둥이 치는 성을 향해 조금 흥미를 가질지도 모른다. 확실한 ‘보상’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게이미피케이션의 목표는 ‘동기를 자극하여 자발적인 참여와 몰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로 직접 선택을 결정하지만, 선택의 결정권이 외부에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신의 의사보다는 부모나 주변 사람의 권유로 무언가를 시작할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체격이 좋은 자식에게 운동을 시키는 것이다. 자식은 운동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오직 부모의 선택만으로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모를 운동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이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부모의 등쌀에 못 이겨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재미와 성취를 느껴 자발적으로 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외적 동기가 내적 동기를 자극한 셈이다.

이때, 외적 동기는 부모의 지시이며 내적 동기는 운동을 하며 느끼는 재미와 성취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다르긴 다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사진 출처 : MBC

외적 동기는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가 외부에 자극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것을 뜻한다. 학습자(학생)가 과제를 수행할 때에는 상과 벌, 평가, 경쟁, 협동 등의 요소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학창 시절에 숙제를 하지 않으면 복도에서 손을 들고 벌을 서게 하거나, 청소를 깔끔히 한 사람은 다른 학생들보다 일찍 하교할 수 있게 하는 등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거나 적응하며 지내왔다.

반대로 내적 동기는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가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을 뜻한다. 학습자가 과제를 수행할 때에 흥미, 호기심, 만족감, 성취감 등을 느낀다면, 굳이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참여(과제를 수행) 할 것이다.

어려운 계산 문제를 붙잡고 끙끙거리다가, 마침내 정답을 맞혔을 때에 느껴지는 그런 짜릿함 말이다. 그런 짜릿함은 다음 문제를 풀기 위한(또 다른 씨름을 위한) 좋은 원동력이 된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동기 부여’다. 그렇다면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 중에 더 강력하거나, 더 효과적인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주어진 상황과 대상의 특성에 따라서 아주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동기부여는 대상의 행동에 날개를 달아주곤 하지만, 어설픈 동기부여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예시를 한번 들어보자.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2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2

사진 출처 : 네이버 웹툰 '이말년씨리즈'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에게 설거지를 시키셨다. 하기 싫다고 불평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당신은 설거지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설거지를 할 때마다 용돈 5000원을 준다고 하신다면? 어차피 설거지는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여기에 돈까지 받는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다. 2022년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9160원인데, 이 정도면 남는 장사다.

하지만 만약 설거지의 대가가 5000원이 아닌 1000원이었다면 어떨까? 이 상황에서도 당신은 설거지를 할 마음이 생겼을까?

 

1000원은 좀...

 

돈 대신 설거지를 하지 않았을 때 처벌을 받는 경우는 어떨까? 부모님은 잔소리를 하시고 용돈은 줄어들고 자칫하면 회초리를 맞을 수도 있다. 보상과 처벌 같은 외적 동기는 모두 '설거지를 하도록 만든다.'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그 일을 했을 때 어떤 보상이 있고, 또는 어떤 처벌이 있는지에 따라 '용돈벌이'와 '강제노동'이라는 극과 극의 결과를 가져온다. 이때의 결과는 학습자의 인식이다. 실제로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느끼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찬장을 깨끗하게 꾸미고, 그릇이 예쁘게 정리된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럴 경우에는 굳이 외적인 동기 부여 없어도,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할 것이다.

부모님이 아니라 연인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애인이 집을 방문하는 상황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설거지를 할 뿐만 아니라, 집안 청소까지 하지 않을까.

내적 동기는 외부의 어떤 보상이나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 한번 형성된 이 습관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이것이 내적 동기부여의 힘이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이 두 동기들을 분석하고,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동기를 부여한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다르다. 누구는 금전적인 보상에 무게를 두고, 누구는 정서적인 행복감에 무게를 둔다. 각각의 사람마다 각자의 동기를 가진다. 그렇다면 게임에서는 어떨까?

 

그님티? (그래서 님 티어가?)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랭크 티어' 시스템. 왼쪽 상단부터 아이언, 브론즈, 실버, 골드, 플레티넘, 다이아몬드, 마스터, 그랜드마스터, 챌린저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랭크 티어' 시스템. 왼쪽 상단부터 아이언, 브론즈, 실버, 골드, 플레티넘, 다이아몬드, 마스터, 그랜드마스터, 챌린저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롤)의 ‘티어’시스템을 보자. 롤은 현재 9단계의 랭크 게임 티어가 있는데, 시즌이 종료되기 전 4번째 단계인 ‘골드’티어 이상을 달성하면 ‘랭크 종료 보상’으로 '챔피언 스킨'을 받을 수 있다. 이 보상은 해당 시즌에만 받을 수 있는 보상이며, 그때가 아니면 다시는 얻을 수 없다.

어떤 플레이어는 랭크 종료 보상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롤을 하겠지만, 모든 플레이어가 보상을 목표로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사람도 있고, 보통은 랭크 자체를 올리는 것에 의의를 둔다. 아래 티어의 플레이어를 놀리기 위해서 열심히 게임을 하는 것이다.

게임 내에서 말다툼을 하게 되었을 때, 쉽게 접할 수 있는 말이 있다. "그님티?" 롤은 ‘티어’가 곧 계급인 사회기 때문에, 롤에서 높은 티어를 유지한다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누구는 골드 티어를 달성하여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자마자 게임 플레이를 멈출 수도 있고, 누구는 자신의 라이벌 격인 친구보다 티어를 높이기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하기도 한다. 실력이 뛰어나서 50판 만에 골드 티어를 달성할 수도 있지만, 500판을 하고서야 겨우 달성할 수도 있다. 이번 시즌의 보상이 자신이 주로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스킨이 아니라면, 굳이 열심히 랭크 점수를 올리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각자가 자신만의 게임 플레이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플레이어들도 있다. 그들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목표를 두고 게임을 플레이한다.

 

이기는 게 중요하냐? 중요하긴 한데...

롤 프로게이머 '칸(Khan) 김동하' 

사진 출처 : '인벤' 유튜브

승리는 곧 점수의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강력한 외적 동기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강력한 ‘내적 동기’라는 연료로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이 있다. 롤에는 '탑신X자'와 '충(蟲)'이라는 은어가 있다.

롤은 5명의 플레이어가 한 팀이 되어 서로의 넥서스를 먼저 부수는 쪽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5명의 플레이어는 각각 맡은 역할이 다른데, 그중에서도 '탑'을 플레이하는 사람은 보통 어떤 강력한 내적 동기에 의해서 움직인다.

이른바 '탑신X자'들은 게임의 상황을 신경 쓰지 않고, 상대방을 죽이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게임의 승리'보다, '적 탑 라이너'를 짓밟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탑 유저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또, 죽어라 한 캐릭터만을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의 영역이지만, 문제는 롤이 팀게임이라는 점이다. 5명의 플레이어는 서로의 캐릭터들 간의 조합을 신경 써야 하며, 상대방의 조합에 따라서도 '적절한 선택지'가 바뀌곤 한다.

한마디로, 하고 싶은 것만 해서는 이기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재밌는 캐릭터를 꼭 해야지 직성이 풀리는 유저들이 있다. 그들이 고르는 캐릭터에 벌레 충(蟲)자를 써서, XX 충이라고 부르곤 한다.

 

롤의 대표적인 충(蟲) 챔피언들. 이 목록은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다.
롤의 대표적인 충(蟲) 챔피언들. 이 목록은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다.

 

내적인 동기부여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그것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그에 대한 반응은 오롯이 플레이어의 몫이다. 팀원 모두가 충 챔피언을 플레이하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강제할 수는 없다. 그런 유저들은 '게임의 승리'나 '팀원과의 시너지'보다도, '내가 하고 싶은 캐릭터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두 유형의 플레이어들이 이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가 승리를 마다하겠는가. 다만, 그것이 주된 목표가 아닌 것이다. 그들에게 외적인 동기와 외적인 보상은 그저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고, 스스로가 정한 목적과 목표를 따르는 것이 '게임을 재밌게 하는 것'이 된다. 누가 더 좋고 나쁜 건 없다. 각자는 각자의 동기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다.

 

어떤 동기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재밌는 광고로 마케팅에 성공한 영어 학습 플랫폼 '야나두'의 광고 장면
재밌는 광고로 마케팅에 성공한 영어 학습 플랫폼 '야나두'의 광고 장면

사진 출처 : 야나두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는 각각 장단점을 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적인 동기와 외적인 보상에 자극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외부에서 발생하는 것들은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외적 동기는 처음에는 강력할 수 있지만 여러 상황적 제약이 따르며, 계속해서 행동을 유도하기 힘들다.

반대로 내적 동기는 애초에 동기 자체를 부여하기가 힘들지만, 한번 플레이어의 내면에 타오른 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이 내적 동기에 불을 지피는 것이 게이미피케이션의 주된 목적 중 하나이다.

내적 동기는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스스로 숙제하는 것이 즐거운 학생은 더 이상 어느 누구의 터치가 필요하지 않다. 그는 공부를 즐길 뿐이다. 외적인 보상은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