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바위보에 규칙이 없었더라면

만약 가위바위보를 하다가 바위를 낸 친구가 보를 낸 친구를 이겼다고 주장하면 어떨까. 바위로 보자기를 박살 낼 수 있다면서 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규칙을 확실하게 정해둬야 한다. 바위는 가위를 이기고, 가위는 보를 이기고, 보는 바위를 이긴다는 '모두에게 납득되고 통용될 수 있는'규칙이 필요하다.

규칙을 정해두지 않으면 게임은 상당히 혼란스러워진다. 욕설과 비방이 난무한다든가, 악의적으로 게임 진행을 방해하는 사람도 생길 수 있고, 버그 악용이나 불법 아이템 거래 등과 같은 비도덕적 게임 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유저들은 게임 규칙의 허점을 파고들고, 이를 통해서 재미를 느낀다.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게임의 규칙은 보통 게임이 정하지만, 게임 측에서 딱히 규칙을 정하지 않았는데 플레이어들끼리 규칙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의 경우가 그렇다. 롤은 5명이 팀을 이뤄 5 대 5로 진행하는 게임인데, 초창기에는 플레이어들의 포지션이나 역할 군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모두들 하고 싶은 캐릭터(챔피언)를 선택하고 가고 싶은 곳(라인)에 갔다.

하지만 유럽의 E-Sports 팀 ‘Fnatic’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EU 스타일’(탑 라인과 미드 라인은 1명씩, 바텀 라인에는 AD 딜러와 서포터를 함께, 정글에는 정글 몬스터를 사냥하는 정글러를 배치하는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이 형태는 게임이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즌 1에 만들어졌지만, 시즌 12인 2022년 현재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통용되는 것을 넘어서 아예 게임 개발사인 '라이엇 게임즈'에서도 이 스타일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서 패치에 적용시켰다. 등급(티어)을 높일 수 있는 '랭크 게임'에서 선호하는 포지션을 미리 정해놓고 게임의 매치를 기다릴 수 있게 됐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정글', '탑', '미드' 'AD(원거리 딜러), '서포터'이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정글', '탑', '미드' 'AD(원거리 딜러), '서포터'이다.

"곧무?", "ㅇㅇ"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에는 신기한 문화가 있다. 바로 "곧무?"와 '자리'다. 메이플스토리의 필드에는 일반 몬스터보다 강한 ‘엘리트 몬스터(이하 엘몬)’가 젠이 될 때가 있다. 엘몬은 생각보다 잡기 쉬운 편인데, 엘몬을 17번 처치하게 되면 “이곳이 어둠의 기운으로 가득 차 곧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합니다.”라는 멘트가 등장한다. 그리고 20번째 주기에는 강력한 ‘엘리트 보스(이하 엘보)’가 등장한다.

이 엘보가 주는 보상이 쏠쏠하다. 그래서 채널을 바꿔가며 엘보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곧무원(곧-+공무원)’들이 생겼다. 그들이 여러 채널을 돌아다니며 하는 고정적인 멘트가 바로 "곧무?"다.

메이플스토리의 '엘리트 보스'들.
메이플스토리의 '엘보'들.

엘몬은 비교적 쉽게 처치가 가능하지만, 엘보는 잡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메이플스토리의 특별한 규칙인 '자리'시스템이 끼어든다. 메이플스토리를 포함한 대부분 MMORPG에서 자리는 '내가 먼저 와서 사냥하고 있었으니, 방해하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라'라는 뜻이다. 먼저 사냥하고 있는 곳에 와서 방해하는 행위를 스틸(steal), 스틸을 하는 사람을 스틸러(steal+er)라고 칭하기도 한다.

일반 유저 입장에서는 엘보 한 마리 때문에 겨우 자리 잡은 자리를 버리고 이동하기 아깝다. 게다가 엘보를 잡을 수 있는 곧무원들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고, 자칫하다가는 곧무원들이 '스틸러'로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일반 유저들은 곧무원들의 순찰을 반기는 편이다. 일반 유저는 사냥에 방해가 되는 엘리트 보스가 사라져서 좋고, 곧무원들은 보상을 챙길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인 셈이다.

신기한 점은 이 '자리'와 '스틸'이라는 개념에 대해, 게임 측은 아무런 의견을 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엄연히 유저들간의 '약속'이며, 글로 규정되어 있지도 않고 약속의 잘잘못을 따지는 '경찰'역할을 하는 것도 유저들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자리싸움 때문에 유저들이 모여들다가, 나중에는 맵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재의 그래픽과 상당히 다른 과거 메이플스토리 플레이 화면. 그러나 지금까지도 '자리'는 유효하다.

장비를 착용하지 않는 이유

규칙은 게임 내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유저가 '게임 외적인 규칙'을 스스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소울류’ 게임으로 유명한 ‘다크소울’이 그렇다. 다크소울 시리즈는 무난하게 플레이해도 끝까지 클리어하기 어려운 게임으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게임이 출시된 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조금은 특이한 플레이 후기들이 올라오고 있다.

1레벨에 지급했던 기본 장비로 최종 보스를 클리어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눈을 감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교적 최근 출시한 '소울류'게임인 '엘든 링'도 그렇다. 벌써부터 평범하지 않은 플레이 영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스스로에게 제약을 주는 게임 플레이는 플레이 자체로도 성취감을 주지만, 자신의 플레이를 공유할 때에도 즐거움을 주곤 한다. 다른 사람들의 부러운(혹은 이상한) 시선을 느끼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조회 수나 좋아요, 팔로우는 덤이다.

게임 '엘든 링'의 필드 보스 '트리 가드'. 자세히 보면 캐릭터가 기본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게임 '엘든 링'의 필드 보스 '트리 가드'. 자세히 보면 캐릭터가 기본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유튜브 '더키드'

게임의 빡빡한 규칙은 오히려 플레이에 부정적일 수도 있다. 하고 싶은 플레이가 규칙에 의해서 애초부터 금지되어 있다면,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맥이 빠지게 된다. 그래서 최근 출시되는 게임들은 최소한의 규칙만을 설정한 채, 유저의 '자유도'에 중점을 둔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봐라."라는 느낌이다.

게임이 규칙을 정해준다고 꼭 게임이 원활하게 굴러가지는 않는다. 플레이어들은 너무나 다양한 성향을 지니기 때문에, 게임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포기할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선택한 것이 꼭 장점이 되는 것도 아니고, 포기한 것이 꼭 단점이 되는 것도 아니다. 게임의 규칙에 유저가 무조건 따르려고 하지도 않고, 유저들끼리 만든 규칙에 게임이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게임에서는 유저가 왕이다.
게임에서는 유저가 왕이다.

사진 출처 : JTBC 비정상회담

게임과 게임+화

게이미피케이션 역시 게임에 기반으로 하는 이론이기 때문에 게임의 틀을 어느 정도 따라간다.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틀'위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우선 재미있어야 하고, 동기 부여가 되어야 하며,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학습자는 주는 대로 받아먹지 않는다. 뷔페처럼, 먹고 싶은 음식만을 골라서 먹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며 계속해서 상호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박람회를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박람회는 입장객을 위한 가이드를 마련한다. 관람의 시작점을 정해주기도 하고, 전시물에 대한 소개와 관련된 참여 활동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관람자는 본인의 자유 의지대로 콘텐츠를 즐긴다. 팸플릿에 도장을 받아서 상품을 받는 것이 목적인 사람도 있지만, 그냥 구경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팸플릿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다.

게임이 많은 것을 준비해도 유저는 전부 취하지 않는다. 오로지 '맛있는'메뉴만을 골라서 먹는다.
게임이 많은 것을 준비해도 유저는 전부 취하지 않는다. 오로지 '맛있는'메뉴만을 골라서 먹는다.

이처럼 규칙은 아주 광범위한 '규정'의 의미로도, 정말 사소한 '관습'같은 개념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이미 게임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신규 플레이어들은 게임에 적응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게임의 시스템과 조작법 같은 것을 배움과 동시에 눈에 보이는 딱딱한 규칙들과, 유저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그들만의 규칙'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실제로 이런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플레이어들도 적지 않다.

너무 강력한 규칙은 게이머들의 숨통을 옥죄고, 아무 규칙이 없는 무(無)의 상태는 질서 없는 혼돈을 불러온다. 그래서 규칙은 아주 섬세하게 짜야 한다.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플레이어의 자유도를 해치지 않는 미세한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게임 제작도, 게임화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