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게 좋아
한국의 게임 시장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늘 있던 게임을 늘 하는 사람만 플레이하는 것 같다. PC방 점유율 순위를 보면, 익숙한 이름들이 보인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11년, '서든어택(서든)'은 17년, '메이플스토리(메이플)'는 19년, '스타크래프트'는 출시된 지 22년이나 됐다.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로스트아크(로아)', '배틀그라운드(배그)', '오버워치(옵치)'같은 게임이 갸륵하다. 엄청난 대선배들 사이에서 밥그릇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도 메이플과 서든은 다른 게임들과는 다른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침체기'를 겪은 게임이라는 점이다. 물론 언제나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게임이 어디 있겠냐마는, 저 두 개의 게임은 조금 특별하다. 게임이 아예 '망했다'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확률 조작'이라는 이슈로 메이플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이미지를 줬던 메이플, 배그와 옵치라는 완벽한 상위 호환의 등장과 서든어택 2의 실패로 몰락한 서든. 두 게임이 '망겜'소리를 들은 데는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겠지만, 우리가 주목할 점은 저 게임들이 어떻게 다시 재기에 성공했느냐다.
2021년 4월, 메이플은 고객 간담회를 개최했다. 각각의 커뮤니티와 랭킹을 대표하는 유저 10인을 선정하고, 직접 개발의 총책임자인 디렉터 강원기가 모습을 보였다. 사실 직접 디렉터가 등장한다는 것은 꽤나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한국의 게이머들은 어느 정도 익숙했다. 바로 옆 동네 로아에서는 '로아온(LOAON, 로스트아크 업데이트 로드맵)'에 디렉터 금강선이 꼬박꼬박 얼굴을 비췄기 때문이다.
하필 비교 대상이 '갓겜'이라고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로아였기에, 메이플은 안 그래도 하락하고 있던 이미지가 더욱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아예 로아로 '이주'하겠다는 '메난민(메이플스토리+난민)'들까지 등장하며, 게임은 말 그대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19주년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2030세대 중 메이플스토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유달리 유저의 이탈이 뼈아팠다. 잠깐 하다 가는 사람들이 아닌, 꾸준히 게임을 즐겨온 유저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골수 유저'의 이탈은 게임의 뿌리를 흔들 수도 있다. 한번 미운 털이 박히면 빠지기 쉽지 않다.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메이플은 포기하지 않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평가를 들으면서도 간담회를 진행했고, 간담회에서 약속한 370여 가지의 약속 중 60% 이상(2021년 11월 기준)을 지켰고, 개선해나가고 있다. 꾸준히 진행하는 여름방학, 겨울방학 이벤트들로 유저들을 끌어모으고, 도태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펼치고 있다.
이런 메이플의 노력과 변화에 보답이라도 하듯, 떠나갔던 유저들은 천천히 메이플로 복귀하고 있다. 워낙 기초작업이 탄탄해야 하는 게임의 특성도 그렇고, 이제 '라이트'보다는 '헤비'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만큼 유저들은 게임에 '묶여'있기도 했다.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아까운 것이다. '린저씨(리니지+아저씨)' 다음은 '메저씨(메이플스토리+아저씨)' 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메이플은 2030과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메이플스토리 공식 홈페이지 (https://maplestory.nexon.com/Home/Main)
서든은 더욱 독특하다. 서든은 FPS장르 안에서 캐주얼함을 표방하며 'K-FPS'를 대표하고 있다. '좀비 모드'로 한때 PC방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의 인기도 사그라든지 오래고, 서든은 이제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국산 FPS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16년 옵치, 2017년 배그의 등장으로 인해 나름 탄탄했던 서든의 유저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 다양하고 더 현실적인 FPS들의 등장은 국내시장에 고여있던 서든에게 자극이 되기 충분했다. 많은 유저들은 혜성같이 등장한 신규 게임들로 '찍먹'을 시도했고, 이내 정착하기도 했다.
두 게임의 등장은 서든어택뿐만 아니라 FPS를 넘어 게임 산업 전반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 왔다.
사진 출처 : 오버워치 공식 홈페이지(https://playoverwatch.com/ko-kr/), 배틀그라운드 공식 홈페이지(https://pubg.game.daum.net/pubg/index.daum)
게임이 나이가 듦에 따라 유저들도 나이를 먹는다. 게임이 '고인물'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도, 유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서든은 낮아져만 가는 점유율 속에서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다. 이왕 '캐주얼 FPS'를 표방한 김에, 아예 색다른 여러 모드들을 출시한 것이다. 대표적인 게 '뱀파이어 모드'와 '갓모드'등이다.
확실히 '색다르'긴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고인물'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이미 지금껏 즐겨온 '웨어하우스', '제3보급창고', '크로스카운터'같은 맵에 적응한 상태인데, 새롭게 출시한 모드에 관심을 주지 않게 된 것이다. 하다못해 유저들이 사용하는 총기도 그렇다. 'AK-47', 'M4A1', 'TRG-21'의 3강 체제는 서든어택이 출시한 이후로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이미 게임이 고일대로 고여버린 것이다.
고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
서든은 2019년 8월 1일, 서든만의 배틀패스인 '서든패스'를 도입했고, 이는 서든과 유저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서든은 서든패스로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좋고, 유저는 크지 않은 금액으로 서든패스를 구입해서 게임 화폐(SP)나 기존에 비해서 성능이 좋은 총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인기가 없는 모드를 플레이하는 것이 미션으로 주어져도, 유저는 보상을 위해서 열심히 플레이하게 됐다. 2020년 들어서 배그, 옵치로 유출됐던 유저의 상당수가 다시 서든으로 복귀하면서, 동시 접속자 수와 PC방 점유율도 다시 상승했다. 2016년 9월 더 로그, 게임트릭스에서 서든의 점유율은 9.55%였는데, 달성한 이래 약 5년 만에 다시 9.54%,9.36%로 회복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 : 서든어택 공식 홈페이지 (https://sa.nexon.com/main/index.aspx)
인기가 있는 게임이나 없는 게임이나 나름대로의 고민을 안고 있다. 변화는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변화의 수단으로써 메이플은 '소통'과 '공감'을, 서든은 '다양함'과 '게이미피케이션(배틀패스)'를 택했다. 물론 배틀패스 제도는 최근에는 웬만한 게임들에 다 적용되는 추세긴 하다. 하지만 서든 같은 '고인물'게임에서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기 위한 도전이 먹힌 셈이다.
그러나 게이미피케이션은 '치트키'는 아니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얼핏 보면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을 것 같고,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불러올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와 교육을 배우는 학습자, 물건을 사는 고객 등 게이미피케이션 대상자들은 단순하지 않다. 낯선 것을 무턱대고 받아들이지도 않고, 싸다고 무조건 구매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고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들의 무거운 엉덩이를 꿈틀거리게 하는 데에 많은 기업들이 고민을 하고 있다. 당신이 많은 방법 중 게이미피케이션을 변화의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아주 구체적이고 정교하게 설계할 각오를 해야 한다. 변화는 모두에게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