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돈 벌자고 하는 일

열심히 사냥하면서 레벨을 올리고 있는데, 레벨 업을 하는 것만으로 보상받는 경우가 있다. 혹은 특정한 지역을 방문하거나, 퀘스트를 완료하거나, 몇 마리 이상의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나 재화를 추가로 지급하는 식이다. 유저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으니 좋을 따름이다.

게임을 운영하는 데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오늘날 대부분 게임은 부분 유료화를 택하고 있고, 아직 '정액제'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게임도 남아있다. 게이머들은 '플레이어'이자 '컨슈머'이기 때문에, '과금'에 민감하다. 게임에 돈을 쓰는 것에 대한 생각은 모두가 다르다. '취미에 이 정도는 투자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게임에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플레이어가 게임의 과금 유도를 이런 식으로 느끼는 순간, 게임은 망한다.
플레이어가 게임의 과금 유도를 이런 식으로 느끼는 순간, 게임은 망한다.

그래서 게임은 '매력적인 상품'을 만드는 데에 열중한다. 어떻게 하면 게이머가 캐시 숍에 들어가고, 물건을 살펴보고, 구입할지를 궁리한다. 이는 상당히 진지하면서도 핵심적인 과정이다. '수익 창출 모델'은 잘 만들면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설계에 미스가 나는 순간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금을 유도하는 시스템은 다양한 게 있겠지만, 2010년 후반부터 게임계에 도입되고 있는 방식이 있다. 바로 '배틀 패스(Battle Pass)다. 배틀 패스는 특정 기간 게임 플레이를 통해 레벨 업이나, 숙제(일일/주간 퀘스트를 칭하는 은어) 등을 수행함으로써 진척도를 올리고, 그에 따른 보상을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배틀 패스를 구입하는 순간 즉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게임은 배틀 패스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몇 가지 예시를 알아보자.

로스트아크의 '아크 패스' 시즌1

 

안 사도 할만한데?

'로스트 아크(로아)'는 이른바 '혜자 게임'으로 정평이 난 상태다. 게임을 꾸준히만 하면 누구나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아의 '아크패스'는 미션을 수행하면 '아크 경험치'가 쌓이고, 일정량 누적되면 '아크 레벨'이 상승해서 레벨에 맞는 보상을 획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눈여겨볼 것은, 아크패스 자체는 무료라는 점이다. 안 그래도 과금하지 않아도 나름 원활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게 로아의 특징인데, 추가적으로 아크패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상위 등급인 프리미엄과 슈퍼 프리미엄을 활성화할 시 전용 보상을 얻을 수 있는데, 여기서 과금 유저와 무과금 유저의 차이가 생긴다. 프리미엄과 슈퍼 프리미엄은 '전용 보상'이란 것에 더해, '기간 한정 보상'같은 매력적인 요소를 제공한다.

아크 경험치를 쌓는 방법은 반복해서 수행할 수 있는 '일반 미션'과 시즌에 한 번만 수행할 수 있는 '시즌 미션'이 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익숙하거나, 이득이 되거나(보상을 주거나), 재미있는 콘텐츠만을 소비하게 된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더 빨리 보상을 받고 싶다는 욕망을 원동력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즐긴다. 평소 하지 않던 것들에도 손을 댄다.

물론 로아는 그런 면에서 아주 잘 설계된 게임이다. 배틀패스는 게임을 '판'수로 계량할 수 있는 장르에 적합한 시스템이지만, 아크 패스는 메인 콘텐츠부터 서브 콘텐츠까지 게임 내에서 골고루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재화를 보상으로 설정했다. 이는 배틀패스를 MMORPG에 적용한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아크패스 보상의 핵심은 '합리성'이다. 물론 슈퍼 프리미엄에서만 얻을 수 있는 '한정' 아바타, 무기 같은 것이 존재하지만, 아크패스의 보상은 모두 캐릭터를 육성하는 데에 필수적인 재화들이다. 어차피 과금해서 필수 재화를 구입하는 것보다, 한정 보상과 추가 보상을 얻는 게 좋은 건 당연하다.

카트라이더의 '카트 패스'

 

저 엔진이 없으면 따라잡을 수가 없어...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카트)'는 17년째 서비스 중인 장수 게임이다. 카트는 2020년 7월 23일 패치로 '시즌 패스'를 추가, 1년 만인 2021년 7월 8일에 '카트 패스'라는 이름으로 배틀 패스를 대체했다. 시즌 패스에서 카트 패스로 바뀌면서, '럭셔리 패스', '스페셜 패스', '이벤트 패스' 등이 추가되었다. 

문제는 카트의 개발진이 직접 'V1 카트바디는 카트 패스로 만나볼 수 있다.'라는 언급을 한 것이다. 카트는 엔진 세대로 차량의 등급을 구분할 수 있는데, 2021년 3월 4일 V1 엔진이 출시된 이후 현재 카트의 가장 높은 등급은 V1 글자가 붙은 카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V1 엔진 카트를 얻으려면 카트 패스를 구입해야만 하는 것이다.

카트 패스 보상의 핵심은 '비교'다. V1 카트를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이 패스의 구매를 유도한다. 사실상 '강매'에 가까운 이런 시스템은 어느 정도의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카트라이더는 '정액제'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래도 출석 체크나, 루찌로 구입할 수 있는 V1 카트들도 몇 개 남겨놔서, 무과금 유저들을 아예 등한시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기계와 장치 2 패스+'
리그 오브 레전드의 '기계와 장치 2 패스+'

 

제 캐릭터 예쁘죠?

리그 오브 레전드(롤)에서는 특정 스킨 시리즈가 출시될 때마다 이벤트 패스를 출시한다. 이벤트 패스를 구매한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하거나, 미션을 완수할 때마다 이벤트 재화를 이용해서 '프레스티지 스킨'등 한정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롤은 2018 월드 챔피언십 이후로 '프레스티지 에디션 시리즈'라는 특별 한정판 스킨을 내놓고 있다. 외형적으로 금색과 흰색, 번쩍이는 이펙트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급형 크로마(일반 스킨에 추가적인 이펙트나 디테일을 추가한 스킨)라고 할 수 있다.

프레스티지 스킨이 특별한 점은, 일반 스킨처럼 '직접적으로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벤트 임무 보상, 임무 패스, 랜덤 박스 세트 등에서 소량씩 '프레스티지 포인트'를 모을 수 있으며, 보통 100포인트가 모이면 구매할 수 있지만 모으기가 여간 쉽지 않다.

롤 패스의 핵심 보상은 '희소성'이다. 과금을 하지 않아도 게임 플레이에 전혀 영향이 없지만, 플레이어들은 남과 다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패스를 구입하고, 스킨을 얻으려 노력한다. 무과금 유저와 과금 유저의 차이는 캐릭터의 강함의 정도로도 나타나지만, 멋있는 치장 아이템이나 스킨으로도 보이곤 한다.

좌측은 'K/DA 카이사', 우측은 'K/DA 카이사 프레스티지 에디션'이다.두 스킨의 차이점은 이펙트 뿐이다.
좌측은 'K/DA 카이사', 우측은 'K/DA 카이사 프레스티지 에디션'이다.두 스킨의 차이점은 이펙트 뿐이다.

사진 출처 : 리그 오브 레전드 공식 홈페이지 (https://www.leagueoflegends.com/ko-kr/

이런 것도 있는데, 관심있어?

배틀 패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보다 유저 친화적인 과금 형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게임의 과금 요소들은 '확률'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배틀 패스는 확률이 개입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확정적'으로 보상을 얻을 수 있으며, 그들의 '노력'에 의해서 '성과'가 나온다는 점이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배틀 패스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럴듯한 보상으로 유혹할 뿐이다.

하지만 앞서 카트의 경우에서 살펴봤듯, 유료 보상의 성격이나 패스 자체의 가격에 따라서 유저들은 패스를 거부할 수도, 아예 게임 플레이를 그만둘 수도 있다. 배틀 패스는 어디까지나 게임에서 '부가적'인 영역이고, 게임은 이를 '그럴 듯'하고 '적절'하게 설계해야 한다. 아직 배틀 패스가 도입되지 않은 게임도 많고, 배틀 패스가 출시되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던 대로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도 많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전혀 과금을 하지 않을 수도, 귀찮은 과정을 돈으로 해결하고 싶을 수도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전혀 과금을 하지 않을 수도, 귀찮은 과정을 돈으로 해결하고 싶을 수도 있다.

나, 좀 열심히 한듯?

배틀 패스는 게임 속의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꾸준히 출석 체크를 하면 보상을 주는 시스템처럼, 배틀 패스는 구입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직접 보상을 얻기 위해서 게임을 열심히 플레이해야 한다. 유저는 자신이 받을 보상을 미리 확인하고 그에 따라 플레이 시간을 조정하거나, 미션을 완수하기 위한 동선을 최적화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을 적용할 때에도 '보상'의 적절한 설계가 필요하다. 외적 보상은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만족감을 가져온다. 하지만 비교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는 내적 보상 역시 대상자의 내적 동기부여를 자극한다.

임무 완료 버튼을 눌러 보상을 받는 것은 긍정적인 자극이다. 상태 창의 '모든 임무 완료'같은 글씨는 플레이어에게 또 다른 만족감을 준다. 캐릭터의 레벨이나 강력함은 남들도 볼 수 있는 노력이지만, 한 달 동안 꾸준히 출석부에 도장을 찍거나 배틀 패스의 모든 보상을 수령했다는 것은 스스로가 확인할 수 있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나의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건, 어느 분야에서나 의미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