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렸을 때 한 번쯤 '원 없이 게임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PC의 사양은 높아졌고, 출시하는 게임의 그래픽 역시 발전했다. 그리고 다들 집에 데크스톱을 하나씩 장만하게 됐다. 하지만 그때의 바람처럼 생각보다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게임을 켜서 플레이하다 보면 이내 피로해지기 십상이다.

게임의 '피로도'는 유저들의 건강과 과몰입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다. 명목은 아주 그럴듯하지만, 그 속에는 '언제 콘텐츠가 다 소모되어 유저들이 떠날지 모른다.'는 개발사의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더 이상 즐길 콘텐츠가 없으면, 게임은 자연스럽게 쇠퇴한다.
더 이상 즐길 콘텐츠가 없으면, 게임은 자연스럽게 쇠퇴한다.

사진 출처 : unsplash (https://unsplash.com/)

 

던전앤파이터는 '피로도 시스템'을 적용한 대표적인 게임이다. 캐릭터 하나당 156의 피로도를 갖고 있으며, PC방에서 플레이할 경우 추가로 78, 여기에 주말에는 추가로 20을 더 지급한다. 예를 들어 주말에 PC방에서 게임을 할 경우 284의 피로도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던전앤파이터의 피로도는 게임의 이름답게, 던전 내부의 맵을 이동할 때마다 피로도 1이 차감되는 형식이다. 캐릭터의 피로도가 모두 소진됐을 경우, 메인 콘텐츠인 '던전'에 입장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피로 회복의 영약' 같은 아이템으로 피로도를 1일 1회에 한하여 증가시킬 수도 있다.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도 비슷한 상황이다. '쿠키런'의 경우, 게임 캐릭터인 쿠키들은 등급에 따라서 플레이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고, 1회 충전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상이하고, 피로도를 모두 소모했을 경우 회복하는 시간도 모두 다르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화면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화면

 

콘텐츠는 한정적이다.

게임사는 유저의 플레이 시간을 제한해서 좋을 게 뭐가 있을까? 게임사는 게임을 제작할 때, 콘텐츠가 빠르게 소비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게임을 '정복'해버린 유저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게임에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고, 신기한 것이 없다면 게이머는 급속도로 지루함을 느낀다. 말 그대로 할 게 없기 때문이다. 채팅을 치거나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게임사 입장에서 콘텐츠 소비 속도를 줄이면 자연스레 게임의 수명을 길게 가져갈 수 있고, 피로도 회복 아이템을 통해 매출을 높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게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라이트 유저'들에게 '헤비 유저'를 따라잡을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게임사는 유저들의 평균 플레이타임을 비슷하게 조정해,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를 제한할 수 있다.

물론 그날의 피로도를 소모하지 못하는 유저들은 앞서 나가는 유저들과 격차가 벌어지겠지만, 아예 제한이 없는 상황보다는 확실히 차이가 덜할 것이다. 아예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볼 정도로 심해지지 않는 것이다.

뉴비들에게 이런 '고인물'들은 아득한 존재다.

사진 출처: https://m.blog.naver.com/ttognag1212/90193708477

 

던전앤파이터는 캐릭터의 레벨업이 상당히 시원시원한 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 피로도 시스템이 없다면, 대부분 플레이어는 순식간에 만렙을 달성해버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저들은 새로운 콘텐츠가 등장하기 전까지 게임을 놓아버릴 수도 있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유저를 계속해서 묶어놓을 방책이 필요하다.

던전앤파이터처럼 아예 던전의 출입 자체를 제한하거나, 쿠키런의 쿠키가 달릴 기회마저 사라지는 것은 조금 가혹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유저 입장에서는 '내가 시간을 투자해서 게임을 하겠다는데, 게임이 나를 막아?'하고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휴식 게이지를 소모하면, 더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다. 물론 휴식 게이지는 '휴식'해야 쌓인다.
휴식 게이지를 소모하면, 더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다. 물론 휴식 게이지는 '휴식'해야 쌓인다.

 

이런 감정을 보완하고자 로스트아크는 조금 다른 시스템을 차용했다. 바로 '휴식 게이지'다. 로스트아크의 일일 콘텐츠는 '카오스 던전'과 '에포나 의뢰'가 있다. 캐릭터당 카오스 던전은 하루 2회, 에포나 의뢰는 하루 3회 클리어까지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MMORPG의 특성상 대부분의 게이머는 부캐를 키우게 되고, 보유한 모든 캐릭터로 일일 콘텐츠를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휴식 게이지는 피로도와 달리 일정 시간이 지나면 초기화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유저가 게임에 접속하지 않거나 플레이하지 않은 콘텐츠가 누적되는 만큼, 보너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매일 게임을 플레이하기 힘들거나 주말에만 플레이할 수 있는 라이트 유저들의 경우, 이런 시스템이 매우 반갑다. 온종일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 박탈감이 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주 접속하지 못하는 캐릭터라도 3일에 한 번씩 콘텐츠를 즐기면, 그동안 쌓인 게이지 덕분에 어느 정도의 '손해'를 메꿀 수 있는 것이다. (3일이 지나면 휴식 게이지는 최대치에서 더 증가하지 않는다.)

근손실과 로스트아크의 앞글자를 따서 '로손실'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근손실과 로스트아크의 앞글자를 따서 '로손실'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사진 출처: 로스트아크 자유게시판 '경로당매실주스' (https://lostark.game.onstove.com/Community/Free/Views/6974798?page=29&searchtype=0&searchtext=&ordertype=latest&category=0&communityNo=541) 

 

 

손해는 아닌데...

하지만 이 '손해'라는 게 참 웃기다. 사실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손해 볼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날 주어진 피로도를 다 소진하지 못하거나, 그날 플레이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다 소화하지 못할 경우, '손해'를 본다고 인식하는 플레이어들도 많다. 다른 플레이어와의 비교에서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것이다. 게임사에서 '게임 과몰입 방지'를 빙자해서 만든 시스템이 오히려 플레이어들을 더 부추기는 셈이다.

이런 감정은 플레이어를 더욱 열심히 하게 만들 수도, 때로는 아예 나가떨어지게 할 수도 있다. '어떻게든 뒤처지지 않고 따라잡겠다.'는 생각은 바쁜 와중에도 그날의 콘텐츠를 수행하고야 마는 '열혈 플레이어'를 낳기도 하지만, 게임이 '의무'가 되는 순간 플레이 의욕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많은 게이머가 '주간 콘텐츠'를 '숙제'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특히 특정한 요일마다 초기화되는 주간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그날에는 약속을 따로 잡지 않는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한 로스트아크 유저가 제작한 스케줄표
한 로스트아크 유저가 제작한 스케줄표

사진 출처: 로스트아크 인벤 '모짜비' (https://www.inven.co.kr/board/lostark/4821/84166?my=chuchu)

 

 

이것이 '순'기능?

특정 시스템이 도입될 때는 개발사의 의도와 무관하게 '유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식이 달라지곤 한다. 피로도 시스템은 '고인물'에게는 더 이상 플레이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는 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뉴비'에게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과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피로도가 없는, 말하자면 제한이 없는 게임에서는 양극단에 위치한 플레이어들의 차이가 더욱 가속화된다. 랭커들은 '부주'를 구해가며 캐릭터를 육성하고, 라이트 유저들은 기껏해야 주말에 몇 시간 플레이하는 게 고작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사람은 피로도를 더 소모하기 위해서 여러 캐릭터를 육성하고, 또 어떤 사람은 게임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예시는 생각보다 많다. 게임에서 선발 주자에는 남들과 다른 '이점'이나 '특별함'을 원하고, 후발 주자는 앞선 사람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보고 싶어 한다.

피로도 시스템은 결국 플레이어보다는 개발사 쪽에 더욱 친화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어떤 날은 30분만 플레이하고 싶을 수도, 어떤 날은 온종일 게임을 하며 보내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피로도는 시작부터 유저의 자유를 제한한다. 그리고 자유는 '피로도 회복 아이템'에서 오는데, 이는 보통 '현금'으로 판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