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여러 설명을 통해서 게이미피케이션은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는 1693년에 “학습은 어린이에게 플레이와 레크리에이션으로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배우고 싶은 열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상상을 항상 해왔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는 결국 게임이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서 목적을 위해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역사를 알게 되면, 게이미피케이션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 알게 모르게 게임적인 메커니즘들이 비엔터테인먼트 목적들로 적용되어 왔는데, 그러면 어떤 계기로 2000년대, 특히 2010년경부터 '게이미피케이션'이 갑자기 부상하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통신, 인터넷, 스마트폰 등 기술의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엄청난 기술 사용자 수의 증가에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게임화는 디지털로 추정되는 포인트, 리더보드, 성취, 도전과 같은 것들을 담은 것인데, 물론 이것이 게이미피케이션의 모든 것을 뜻하지는 않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형태 중 하나는 분명하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많이 사용되는가
- 쉽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을 장려하기 위한 행동들만 정하고, 보상과 처벌을 추가하면 된다. 더 쉽게 인식하기 위해서 기존 비디오 게임들의 그래픽 등을 카피할 수도 있고, 구현 메커니즘도 기존 애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하면 오래 걸리지 않는다.
- 깨끗하고 구조화된 데이터 형태의 경우에 자동으로 즉각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즉, 인간의 판단을 최소화하고 모든 사용자들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어서 규모의 경제와 속도를 가능하게 한다.
- '행동주의(behaviorism)'를 적용하여, 보상에 대한 행동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인간 행동에 대한 유용하고 정확한 설명이 된다.
그러면, 왜 게임화를 하지 않는 부분들이 여전히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행동주의'는 한편으로 오랜 동안 불신을 받아오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의 실험 심리학과 신경과학 배경이 게임 디자인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았다고까지 말한다. 아직까지도 대다수 게임 및 게이미피케이션 설계자들은 심리학을 예상치 못한 간격의 보상을 통한 원하는 행동을 강화시키는 단순한 방식으로 적용하는 안 좋은 행동주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인간 심리의 내적 상태, 내적 동기부여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유하고 영감을 받는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조작가능한 로봇으로 취급하는 '순수 행동주의'를 최악으로 생각하며, 이러한 긍정과 부정의 강화만 해서는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동기부여를 감퇴시킨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그러면, 내적 동기부여나 자기결정이론 등을 필수적으로 고려하면 다 좋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말하면서, 뛰어난 게임 디자이너들은 자율성, 유능함, 관련성과 같은 자기결정이론 요소들은 필요조건이 아니라 재료일 뿐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여러 상황들에서 여러 플레이어들은 여러가지 다른 게임들을 원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게이미피케이션은 이런 것과 대척점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까지 저자는 말한다. 상당수 유명 게이미피케이션 사례는 행동주의 이론에 의존하는데, 이는 신뢰성도 충분하지 않고, 긍정 효과도 제한적이라고 한다. 어떤 간섭으로 인해서 단기적으로 행동을 바꾸는 '신규 효과'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이 역전되거나 없어질 수 있다.
많은 게이미피케이션 연구들은 게임화가 되지 않은 상태하고만 비교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접근 방식이 아니다. 일반적인 게이미피케이션에서 스토리텔링과 메커니즘을 더 강화해야 하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사람들마다 배경과 동기부여가 다 다르고 적용되는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간과한다. 솔직히 저자가 만든 Zombie 게임도 좀비 자체를 싫어하면 아예 해당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은 아래와 같은 공식으로 표한된다. 즉, 효과적인 게이미피케이션은 재미와 쉬운 참여, 무엇보다도 사용자(플레이어)가 이미 시작부터 동기부여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효과성 = 게임플레이의 질 * 접근성 * 사전에 존재하는 내적 동기부여
또한 저자는 2010년대에 '제인 맥고니걸'이 '게임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라던지,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교수인 제시 셸(Jesse Schell)이 '게임 시스템이 올바르게 디자인되면 사람들을 더 잘 고취시킬 수 있습니다'와 같은 긍정주의, 긍정 심리학의 성장에 대한 다른 시각들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게이미피케이션 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도, 역설적으로 게임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그럴 듯 하지 않아보여서, 성공적인 (교육적 목적도 있는) 게임들을 디자인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 일부 게이미피케이션 옹호자들은 일상의 현실을 무시하는 판타지들로 속이고 있다.
- 제인 맥고니걸의 책 'Reality is broken' 제목의 의미가 과연 맞는가. 사람들은 종종 웅대함(epic)을 잘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 (게이미피케이션의 장점과 별도로) 게이미피케이션에서의 부족한 점 등에 대한 비판을 거의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 물론 성공이 플레이어 숫자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나,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에 비하면 이런 게이미피케이션들은 플레이어 숫자가 상당히 적다. 세상의 문제들이 몇천명-몇만명 수준(때때로 그보다 더 적은)의 헌신적인 플레이어들을 유인하여 게임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을지는 혼란스럽다. 현실이 아니라 꿈이다.
- 또한, 사회적 혁신이나 좋은 의도와 같은 시도들은 실제로 사회적 혁신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한 증거도 부족하다.
이를 저자는 이상주의적인 '유토피아 게이미피케이션'(utopia)이라고 정의하면서, 게이미피케이션 대상 그 자체, 실제 디자인, 성과가 아니라 하려고 약속한 것들을 경험적이고 상징적으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착시효과가 문제라고 말한다. 심지어 제인 멕고니걸이 만든 게임들의 실제 디자인과 성과들이 위와 같은 것들로 인해 중요성이 덜 부각되기도 하였다. 결국, 본질 자체보다는 게이미피케이션으로 인해서 세상을 개선시킬 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상상력을 어떻게 촉발하였는지가 더 중요해졌던 것이라고 말한다.
게임 디자이너들이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들은 게임들로 인하여 게임적 약점들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도 똑같이 해당된다고 가정한 것이 부족한 점이었다. 유토피아 희망은 달성될 수 없고, 믿기를 원하는 것이다.
원래 2010년 초중반까지는 인터넷이나 SNS, 기술 제약으로 인해서 많지 않았으나, 이런 유토피아 게임화가 회사조직 및 라이프스타일 게임화로 번져나갔었다. 이런 강화효과로 인해서 기존 관행관습과 힘의 가치를 확인하는 유혹이 생겨나게 된다. 실제 본질과 관습의 변화가 없이, 모든 내용들과 사람들을 더 낫게 하기 위해서 트릭(trick)을 적용한다는 것으로 인하여, 활동들에 내재한 한계와 문제를 극복하는데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게임산업에 있는 사람들이 게임산업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비판받을 때에 매우 방어적인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게임이 좋은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TV와 비교해보면, 비디오 게임이 특별히 더 유해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TV를 많이 보라고 추천하지 않는 것처럼(어떤 TV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게임도 그러하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비디오 게임들에 대해서 약간은 회의적인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있기 때문에, 게임의 많은 긍정적인 부분들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영향들도 함께 보여주어야 타당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실제로 저자는 2010년 영국 BBC 파노라마 다큐에 출연해서 팜빌(FarmVille)과 같은 게이미피케이션이 고의적으로 "강제 루프"를 게임 디자인에 적용해서 최대한 게임에 오래 있게 만든다고 언급한 것 때문에, 당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인 게이미피케이션의 범람으로, 게이머들 또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더 풍부하고 재미있는 게임들은 부족해 가는 것이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순수한 교육적 의도와 같이 무해할 수 있지만, 일부는 수많은 직원들을 모니터링하는 등의 강압적이고 남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현상을 보고 비판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이 세상을 구하기로 목표했었다면,
이제 당신 자신을 구할 때이다.
이동현 한성대학교 지식서비스&컨설팅대학원 겸임 교수
다음 회차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