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했어요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학창 시절 방학숙제로 일기를 써서 제출하면 선생님께서는 짧은 코멘트와 함께 도장을 찍어주셨다. 도장 외에는 특별한 보상이 없었지만, '참! 잘했어요' 도장은 왠지 모르게 기분을 좋게 했던 것 같다. 뭔가 정말로 '잘 한'느낌이랄까. 그렇게 차곡차곡 일기장에 쌓여가는 도장을 보며 뿌듯했던 때를 우리는 추억하곤 한다.

사실 도장 자체는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특별한 '이득'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장은 다만 기분을 좋게 한다. 무언가 잘한 것 같고, 해낸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이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 '기분 좋음'이 실은 대단한 것이다. 많은 것들이 이 '고양감'에서 출발한다. 일기장의 도장은 하나의 '배지 보상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MBC 무한도전

이왕이면 다홍치마

게이미피케이션에서 배지는 경쟁을 유발하는 보상의 동기가 되는 만큼, 모두가 납득할 만한 공정한 배포 규칙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일기를 10줄 이상 꼼꼼히 써서 도장을 받았는데 그날 날씨와 있었던 일을 대충 나열한 것에 불과한 친구의 3줄짜리 일기에도 도장이 찍힌다면, 도장의 무게감은 확연히 줄어든다. 더불어 나의 동기 역시 감소한다. 10줄짜리 일기를 3줄로 작성할 수도, 아예 일기를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동시에 배지는 수집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형태를 갖춰야 한다.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넘어서 주변에 자랑하고 싶은 정도여야 한다. 어렸을 때는 참! 잘했어요 도장이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수많은 배지 시스템을 겪은 우리들은 그 이상을 원하게 된다.

참! 잘했어요 도장은 다 큰 어른이 주변에 자랑하기에는 애매한 디자인이지 않은가. 결국 배지는 무형의 칭찬 혹은 격려를 가시적인 형태로 바뀌어 받는 것이기에, 시간과 돈, 노력을 쏟아부어서 얻을 가치가 있을 정도로 '예뻐야'한다.

충분히 매력적인 배지는 돈을 주고서라도 얻고 싶어진다.
충분히 매력적인 배지는 돈을 주고서라도 얻고 싶어진다.

컬렉션의 중요성

배지 수집 인터페이스를 효과적으로 설계하면, 학습자의 수집 욕구와 경쟁 욕구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 배지는 결국 '동기 유발'시스템으로, 보상의 일종이라고 이해하면 간단하다.

자신이 모은, 모을 수 있는 배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돈해놓는 것은 학습자에게 계속해서 동기를 부여한다. 학습자는 다른 학습자의 수집 컬렉션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자신도 다른 배지를 모으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즉, 배지 자체만큼 배지 컬렉션도 중요하다.

일반적인 칭찬 스티커는 선물이나 상을 주는 단순한 시스템이지만, 오늘날의 배지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하게 설계된다. 동기가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로 나뉘는 것처럼, 배지 역시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모든 것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적절한 피드백은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이다.
적절한 피드백은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이다.

사진 출처 : tapmyback (https://tapmyback.com/blog/continuous-feedback-vs-annual-performance-reviews/)

커피숍에서는 어떤 음료를 주문하든 1잔당 1개의 스탬프를 찍어준다. 2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든 4500원짜리 프라페를 마시든 배지를 받는다는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10잔을 채워서 한 잔을 더 받는 것이 목표라면 일반적으로 가장 저렴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것이 이득이다.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배지가 수여되는지 알 수 없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든 차등 없이 무작위로 배지가 수여된다면, 일반적으로는 학습자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여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 하지만 경쟁 성향의 학습자에게는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학습자는 적응한다. 배지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만 노력하거나, 아예 배지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노력을 멈출 수도 있다.

도장 10개에 1번이 무료! 이 시스템은 커피숍, 주유소 등 많은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도장 10개에 1번이 무료! 이 시스템은 커피숍, 주유소 등 많은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기부왕? 그게 밥 먹여주나?

게임 '메이플스토리'에는 '훈장'시스템이 있다. 각각의 훈장은 어떤 도전 과제를 완료해야 얻을 수 있는지 명확하게 알려져 있으며, 노력에 따라 다른 층위를 갖도록 설계된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의 성장과 관련이 없는 훈장들도 '수집'을 위해서 획득하려 노력한다. 어떤 훈장은 맵 구석구석을 탐험해야 얻을 수 있고, 어떤 훈장은 단순히 게임에 현금을 많이 투자해야 얻을 수 있다.

그중 '기부왕'훈장은, 각 마을에 있는 NPC에게 최고 금액의 메소(메이플스토리의 게임 머니)를 기부하면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매달 초기화되기 때문에 기부 금액 1위를 유지하지 못하면 훈장은 사라진다. 훈장 탭에 기록은 남아있지만, 재발급은 불가능하다. 한 달짜리 명예를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돈이 남아도는 플레이어들은 계속해서 기부왕 훈장을 얻기 위해 경쟁한다. 일반적인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수집가'들에게 '컬렉션의 완성'을 위해 투자하는 돈은 아까울 게 전혀 없다. 자신의 만족과 남들의 우러러보는 시선이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기부왕 훈장을 발급해주는 NPC '달리어'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간략한 배지 시스템 '명예로운 소환사'가 있다. 게임을 마친 플레이어들은 서로의 팀원을 평가할 수 있는데, '명품 리더십', '유쾌한 팀워크' 강한 정신력'중 하나를 한 명에게 줄 수 있다. 물론 평가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나, 평가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평가에 참여한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세 가지로 구분해놓은 평가 시스템을 가볍게 무시한다. 정말로 리더십을 보여줘서 명품 리더십을 준다기보다는, 그냥 아무 버튼이나 누르고 얼른 결과창 즉, '누가 얼마나 딜을 넣었고 누가 얼마나 회복시켰는지'에 집중한다. 배지 시스템이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경우다.

명예를 많이 주거나 받을수록 '명예 레벨'이 오른다. 플레이어는 시즌이 끝날 때, 명예 레벨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명예를 많이 주거나 받을수록 '명예 레벨'이 오른다. 플레이어는 시즌이 끝날 때, 명예 레벨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피드백 시스템은 교육 측면에서 학습자의 학습 동기를 높일 수 있고, 교사에게도 학습자의 성취도와 이해, 개인적 적성과 관심 등의 변화를 파악하는 도구로써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효과적인 학습 도구이다.

학습자에게 어떠한 피드백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의 수행도는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배지를 너무 많이 부여하면 보상가치가 떨어지고, 너무 적게 부여하면 동기 유발에 실패할 수 있다. 보상은 결국 학습자의 외적 동기를 자극한다.

외적 동기는 보통 강력하다.
외적 동기는 보통 강력하다.

도장 찍어주면 다냐?

배지는 대체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일부 학습자들에게는 중립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자아낼 수도 있다. 교육에서, 일부 학생들은 지식을 탐구하고 습득하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을 뿐, 배지를 획득하는 것은 학습 동기를 향상하는 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반응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은 무분별한 낯선 개념의 도입은 오히려 학습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볼 때, 게임화 요소와 기술을 적용할 때는 교육의 목적과 내용, 학습자의 수준과 성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 배지와 점수는 가시적 측면만 부각된다면 오히려 즐거움과 참여 동기를 방해할 수도 있다.

집게사장은 항상 돈을 좋아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보상이 긍정적이지는 않다.
집게사장은 항상 돈을 좋아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보상이 긍정적이지는 않다.

게이미피케이션의 방법론을 적용한 사례들은 실제로 시행되는 사례들과 같이 꾸준히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에 대한 분석적 연구들은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더욱 부족하다. 게이미피케이션을 가장 빨리 받아들였던 마케팅과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실적이나 결과 지표에 포인트, 배지, 리더보드 등을 사용함으로써 결과 지향적이고 과도한 경쟁만을 부추기기도 했다.

배지 보상 시스템은 게이미피케이션 설계자에게 기본적이면서도 아주 달콤한 설계 요소로 다가온다. 하지만 어느 때나 이는 정교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제시되어야 한다. 모두가 얻고 싶어 하면서, 아무나 얻을 수 없는 배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배지가 매력적이라면, 플레이어는 알아서 배지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참고문헌

정새해(2015), 「다각적인 학습을 위한 피드백 시스템 디자인 연구 - 게이미피케이션의 배지 보상 시스템을 적용하여 - 」, 『디자인융복합연구』 제14권 제6호, 디자인융복합학회, 57-74p